청어람 미디어

현산어보를 찾아서 1~5권

지은이

이태원 글 / 박선민 그림

출간일

2002년 12월 05일

형태

153*224㎜ , 399쪽

가격

23,000원

ISBN

9788989722168

책 소개

책소개

 

이제껏 『자산어보玆山魚譜』로 알려진 손암 정약전의 『현산어보』는 우리 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최초의 해양생물학 서적이다. 1814년(순조 15) 간행된 것으로 전해진 이 저작은 안타깝게도 원본은 실전된 채 필사본만 전해오고 있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때 전라도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이 유배 생활을 하던 중 흑산도 근해의 수산생물을 실지로 조사, 채집하여 기록한 것이다. 수산동식물 2백여 종에 대한 명칭, 분포, 형태, 습성 및 이용 등에 관한 사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실학자의 한 사람으로 다산 정약용의 형이자 천주학자로 유명한 정약전의 이 책은 1977년 정문기 선생과 1998년 정석조 선생이 번역을 한 후 이제껏 새로운 관점에서 번역된 적이 없다. 정약용의 저작들이 거듭 벅역되어 출판되는 현실에 비하면 상당히 홀대받은 편이다.

현직 고등학교 생물교사인 저자는 이렇듯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진 『현산어보』와 정약전의 실학정신을 찾아 7년여 동안 흑산도를 다녔다. 흑산도 현지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희미한 전설이 되어버린 정약전의 옛 이야기를 되살리고, 마치 정약전이 된 듯 직접 바다 생물들을 살피면서 『현산어보』가 담고 있는 내용의 자취를 찾아왔다. 저자는 이 책을 펴내면서 조선 후기의 실학정신을 살리려고 무던히 애썼으며, 그 흔적은 책의 곳곳에 묻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리즈는 『현산어보』라는 우리의 소중한 유산을 찾아 떠나는 여행기이자 『현산어보』의 내용을 실증하는 오늘날의 어보이며, 200년 전의 박물학자 정약전의 정신과 만나는 귀중한 경험임과 동시에 당대의 실학정신을 확인하는 귀한 저작이라 하겠다.

살아숨쉬는 듯 생생한 400여 컷의 세밀화와 800여 컷의 자료 사진이 함께 들어 있는 이 책은 깔끔한 편집이 돋보인다. 또한 한페이지 한페이지마다 저자의 정성이 느껴진다.

출판사 리뷰

 

이용후생과 실사구시의 정신을 21세기에 새로 쓴 新 玆山魚譜
신간 『현산어보를 찾아서』는 200년 전의 박물학자 정약전의 『현산어보』를 2002년에 부활시킨 저작이다. 조선을 지배하던 이학(理學)적 전통에 반해 이용후생과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루는 실학(實學)의 거대한 줄기를 이룬 다산 정약용의 형, 손암 정약전은 신유박해로 인해 흑산도로 고독한 유배의 길을 떠난다. 해배소식만을 기다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훌륭한 실학자의 모습을 보이며 한국 최초의 해양생물학 서적인 『현산어보』를 집필한다. 그의 서문에는 바로 당시 실학자들의 정신이 어떤 것이었던가를 정확히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나는 魚譜를 만들어보려는 생각으로 섬사람들을 널리 만나보았다. … 그러던 어느 날 장덕순 창대라는 사람을 만났다. 창대는 늘 집안에 틀어박혀 손님을 거절하면서까지 고서를 탐독했다. … 성격이 조용하고 정밀하여 풀, 나무, 물고기, 새 등 눈과 귀로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성질을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말은 믿을 만했다. 나는 마침내 이 사람을 초대하여 함께 묵으면서 어족들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내용을 책으로 엮어 『玆山魚譜』라고 이름 붙였다. 어족 외에도 바다물새와 해조류까지 두루 다루어 후세 사람들이 연구하고 고증을 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 『玆山魚譜』 서문 중에서

이처럼 그 책의 서문에는 정약전의 실사구시 정신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200년의 세월을 건너 뛴 지금 신간 『현산어보를 찾아서』의 저자 이태원은 집필을 하는 동안 정약전의 실사구시 정신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나는 정약전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해서 이러한 책을 만들어내게 되었는지, 당시 우리 학문의 풍토는 어떠했는지, 200여 종이 훨씬 넘는 이 많은 생물들의 진정한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 알지 못하던 생물의 정체를 밝혀나가는 과정은 마치 미결사건을 해결해가는 수사관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 여행 도중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 당시 사리 마을의 이장이었던 박도순 씨는 흑산도의 생물과 언어, 민속에 대해 누구보다도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 박판균 씨는 주낙업을 하며 직접 잡아본 다양한 물고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박정국 씨 집에서 함께 만나 조복기 씨와 조달연 씨의 증언은 크기와 사람 키의 두세 배에 이르며, 길고 뾰족한 부리를 달고 있는 신비의 물고기 화절육의 정체를 알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하를 했다….”
— 『현산어보를 찾아서』 ‘책을 펴내며’ 중에서

200년 전 정약전이 그랬듯이 필사본 『현산어보』의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그 내용의 진위를 현대 생물학의 성과에 비추어 이해하려고 한 것은 실사구시의 정신의 발현이라 할 만하다. 뿐만 아니라 정약전이 서문에서, “이 책은 치병(治病), 이용(利用), 이재(利財)를 따지는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시인들도 이를 잘 활용한다면 비유를 써서 자기의 뜻을 나타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미치지 못한 것까지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맺고 있는 것과 같이 신간 『현산어보를 찾아서』에도 단순히 연근해에서 만날 수 있는 물고기와 해양생물의 정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많은 사투리, 요리법, 잡는 법, 속담에서부터 정약전의 행벅, 동생 약용과의 교류내용, 당시 실학자들의 세계관과 자연과학 등 상당히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특히 400여 컷의 세밀화와 800여 컷의 자료 사진은 읽는 이들의 이해의 지평을 넓히기에 충분하다.

저자 이태원
1972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서울대 생물교육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현재 세화고등학교 생물 교사로 재직중이다. 어릴 때부터 뭔가 잡으러 다니길 좋아했다. 늘 산과 들, 냇가를 헤매며 메뚜기와 개구리, 물고기를 잡았다. 가끔 울산 정자리 외가에 들를 때면 몇 걸음 앞에 있는 해변으로 달려나갔다. 파도에 몸이 흠뻑 젖고, 굴 껍질에 발바닥을 베이기도 하며 고둥, 게, 망둑어를 잡았다. 마산으로 집을 옮긴 후에도 이 버릇은 없어지지 않았다. 학교를 마치고 나면 늘 논 고랑을 누비며 납자루, 송사리, 물방개를 쫓고, 갯가를 헤매며 새우와 광어 새끼를 잡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낚시에 맛을 들이기 시작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주말마다 시 외곽으로 원정낚시를 다녔다. 물 빠진 못을 찾아다니며 미꾸리를 사냥했고, 틈틈이 칡이며 더덕을 캐는 일도 잊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잡을 것이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관악산에도 가재와 도롱뇽은 살고 있었다. 수업을 빼먹고 계곡으로 버들치 구경을 가기 일쑤였으며, 너구리를 쫓고 두더지를 잡은 일도 있었다. 그러던 중 식물에 흥미를 느껴 경기 일대의 산과 들을 누비며 사진을 찍었다. 식물을 찍다보니 곤충과 새에도 관심이 생겼다. 천리포 임해실습 시간에 만난 바다생물들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일깨웠고, 언젠가 바다생물을 공부해봐야겠다는 다짐을 굳히게 했다. 대학원 재학 시절 최기철 교수님의 육수생물학 강의를 듣고 민물고기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때 처음 우리 나라 고전에 나타난 생물 관련 기록들을 접하고 선조들의 생물관에 대한 궁금증을 느꼈다. 생물 이름의 어원과 역사 속의 생물 관련 기록들에 관심을 기울이던 중 마산의 한 서점에서 『현산어보』의 번역본을 만났다.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이후 7년에 걸쳐 『현산어보』에 나온 생물들의 정체를 규명하고 정약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에 매달렸으며, 몇 차례에 걸쳐 신지도, 우이도, 흑산도를 답사한 끝에 부끄러운 책을 내놓게 되었다. 지금도 뭔가 잡으러 다닐 것이 없나 여전히 눈을 번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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